조현화랑(달맞이)는 김종학 화백의 사계절 기획 중 두 번째 전시 《SUMMER》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봄’을 주제로 했던 3월 전시에 연결하여 여름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조현화랑 달맞이 공간 2개 층을 각각 다른 내용과 설치 형식으로 분배하여 작가가 여름을 느끼고 표현한 2개의 시선을 만나볼 수 있다. 다양한 형태와 강렬한 색이 아우성치는 〈판데모니움〉과 녹음방초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경〉 연작을 통해 기운생동한 여름의 대규모 회화를 선보인다.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의 변화
1979년 설악산에 정착한 김종학은 당시 주류였던 추상화와 단색화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자연을 작품의 주제로 삼아왔다. 지난 3월 조현화랑에서 열린 《SPRING》전에서 작가는 7.8m의 대형 작품을 전시장 입구에 배치하여 벚꽃이 흩날리는 공간에 온 듯 한 압도감을 선사한바 있다. 이번 《SUMMER》전에서 스케일은 더욱 커지고 내용은 촘촘해졌다. 18m에 이르는 대형 캔버스에 그린 숲 앞에 서면 관람객은 광활한 자연 속의 일부가 된다. 또한 꽃의 표현은 핑크빛에 한정되었던 봄의 색채에서 해방된 듯 원색적이고 다양한 색채로 변화무쌍해졌다.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의 흐름만큼 확장된 작품세계를 각 층별로 나눠진 〈판데모니움〉과 〈풍경〉작업에서 확인할 수 있다.
1층 판데모니움(Pandemonium)
작품 제목 판데모니움(Pandemonium)은 ‘대혼란’을 뜻한다. 영국의 문학가 존 밀턴(John Milton)은 대서사시 《실낙원》(1667)에서 지옥의 도성에 ‘판데모니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판데모니움의 어원에는 ‘모든 영혼이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판데모니움〉은 꽃을 비롯하여 벌과 나비, 거미, 잠자리 등 다양한 곤충과 식물들이 대혼란을 빚고 있는 모습이다. 그야말로 ’모든 영혼이 모인‘형국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는 듯 각자의 색채를 뽐내고 있다. 덕분에 그림은 소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단지 색채들의 아우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림을 가까이에서 볼 때 나타나는 질감 그리고 그 안의 힘이다. 작가는 꽃을 붓이 아닌 손으로도 그린다. 물감을 캔버스에 부어 손바닥으로 펼쳐 그린 꽃잎의 표현, 손가락으로 길게 늘어뜨린 줄기와 잎의 표현에서 작가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서양에서는 여름을 꽃이 만개한 모습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북유럽권에서는 이 계절에 꽃이 가장 많이 핀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판데모니움〉의 다양한 꽃이 일순간 만개한 서양적 정서와 우리 산에 피어나는 꽃이라는 한국적 소재를 모두 포용한 작품이다.
2층 풍경(Landscape)
18m에 달하는 대형 작품에는 작가의 대범함과 세심함이 동시에 투영되어 있다. 커다란 고목나무를 중심으로 양옆에 숲이 우거져 있고 뒤에는 폭포가 있다. 폭포는 몇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째, 나무의 배경으로서의 역할이다. 폭포의 밝은 색채와 대비되어 나무의 실루엣을 강조시킨다. 이는 나무의 기둥이 더욱 단단해 보이도록 하는 효과를 준다. 또한 나무의 중심이 폭포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개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온갖 세속적 유혹과 시류의 흔들림 속에서 깊이 뿌리박고 견뎌내는 예술가의 삶에 대한 상징일 수 있다. 두 번째로 ‘물’의 존재다. 화면 내의 거대한 물줄기는 꽃과 풀 그리고 넝쿨들에 생명력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화면 전체의 시각적 조응과 함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원함과 상쾌함의 감정을 선사한다. 그리고 작가는 관람객의 상상 속에서 숲의 위와 아래를 완성하도록 유도한다.
마지막으로 작가에게 작품의 완성이란 ‘기운생동’이다. 자연을 주제로 하는 작가는 그림에서 천지 만물이 생생히 살아있는 느낌을 주지 못하면 완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판데모니움〉에서 꽃과 곤충, 동물들은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굵은 붓과 신체를 직접 활용한 과감한 터치, 추상적 화면구성 속에 기운생동의 맛이 온전히 전달한다. 그리고 〈풍경〉에서는 폭포와 고목의 상호작용 속 긴장과 조화 그리고 그 사이의 꽃과 풀, 덩굴들에 대한 생명력 있는 묘사가 기운생동 한다. 김종학의 작품들은 결국 ‘기운생동’, ‘생명성’, ‘자연스러움’이라는 키워드로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