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소개
조현화랑에서는 6월21일부터 8월 5일까지 김종학 개인전 <Pandemonium>이 전시된다. 올해로 81세인 김종학은 한국 현대회화사에서 독보적 화풍을 지닌 중요한 작가이다. ‘설악산1)의 작가’로 알려진 김종학은 40년간 자연속에서 지내며, 그곳에서 만난 자연을 재구성하여 화면 안에 색채와 형태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1979년, 설악산 시대라 불리우는 이 시기에 김종학은 단색조 추상화풍2)의 첨단사조와 거리를 두며 자신만의 독창적 화풍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한국 현대 회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채색화의 한 축을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만난 자연은 객체로서의 자연이 아닌 외부대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동경의 대상이자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설악산 천지의 꽃 더미와 우거진 나무들, 절기마다 바뀌는 풍경은 치유의 대상임과 동시에 색의 충격이었다. 이것은 새로운 구상화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던 김종학에게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추상에 기반을 두고 있던 김종학의 구상화는 개념주의적 미술에 빠져있던 동시대의 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며, 한국 현대 회화사에 독보적 입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김종학에게 자연은 재현된 자연이 아닌 형태가 와해된 무질서하며 환상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특히 신작에서 보여지는 더욱더 과감하고 거친 필력은 의식이나 의도가 없이 손이 움직이는 대로 그려진 몸의 기억이다. 즉흥적인 색의 무리가 2차원적 화면 위로 펼쳐지게 된다.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기의 작품이 자연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서사적 구조로 보여주었다면, 신작은 실재하는 자연이 아닌 색의 근원과 형상이 혼재된 시공간을 초월한 추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신작 <Pandemonium>‘대혼돈’ 시리즈는 처음 설악산에서 마주했던 자연의 민낯, 색의 근원과 맞닿아 있는 듯 파격과 정제가 오가는 즉흥적인 표현으로 담아낸다. 원근법을 무시하고 방향을 잃은 꽃의 형상과 강렬하고 두터운 색은 가상공간에서 춤추듯 뒤섞여 새로운 조형언어로 재탄생된다.
이번 전시는 벽면을 가득 채우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평면작품(5mx2.5m)을 포함한 총 10여점이 전시된다. 지난 아트부산 아트페어에서 선보였던 6m 대작은 81세의 나이라고 보기 힘든 강인한 에너지와 색의 향연으로 뜨거운 찬사를 받았으며, 거친 마티에르는 그리기에 대한 작가의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이 여실이 투영되었다. 조현화랑에서 보여질 김종학 작가의 신작을 통해서 한국 현대 회화사의 중요한 맥락을 이해하고 회화가 가진 본연의 힘을 깊이 공유하는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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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높이 1,707m. 대한민국의 척추를 이루며 백두대간의 중심에 있는 산으로 남한에서는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계절마다 다양한 색깔로 바꿔가며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는 설악산은 눈과 바위의 산으로 남한 제일의 명산이다.
2) 1970년대 초반에 태동한 단색화는 서구의 모노크롬과는 다르게 시각만이 아닌 질감을 드러내거나 자연미, 관계성 등을 담으며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사조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미술계가 비서구의 모더니즘 미술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 작가들로 박서보, 윤형근, 정창섭, 정상화, 이우환, 하종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