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
조현화랑에서는 10월 12일부터 11월 25일까지 한국 동시대 미술에서 독보적 화풍으로 입지를 갖추고 있는 이광호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11년(조현화랑 개인전), 2016년(홍콩 아트 센트럴, 조현화랑)에서 선인장 연작을 보여주었던 전시 이후 2년 만에 가지는 전시로써, 가시덤불과 습지를 주제로한 신작 20여 점을 선보인다.
사실주의적 회화로 잘 알려진 이광호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재현으로서의 회화를 넘어선 촉각적, 감정적 언어를 부여한 새로운 환영과 느낌을 표출해낸다. 찔릴 것 같던 메마른 가시들은 오히려 따뜻하고 포근한 촉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축축한 습지는 거대한 자연 속 비밀의 화원을 찾은듯 때론 고요하고 낭만적이기도 하다. 마치 자연을 어루만지는 듯한 감상을 하게 되는 이번 작품은 대상과 거리를 더욱 좁히고 관객을 자연 속으로 끌어들인다.
회화의 사유를 깊이 탐구하는 이광호 작가는 <Inter-View>, <선인장>연작으로 대상의 사실적 재현에 기반을 두지 않고, 주관적 해석과의 간극을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표현해왔다. 뚜렷한 피사체의 형태가 드러나는 인물과 정물을 2차원 캔버스에 오롯이 그 대상만 집중할 수 있게 그려냈다면 풍경은 특정한 사물이라 할 수 있는 구획이 존재하지 않는다. 표현하고자 하는 확실한 존재의 범위가 넓혀지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작가의 욕망이라 할 수 있다. 객관적 사물 하나하나를 집요하게 포착한 <Inter-View>, 관능적이고 동물적인 촉각의 시각화를 극대화한 <선인장>, 촉각적 욕망을 활성화시킨 <풍경>은 회화적 완성을 위한 작가의 붓질 무게가 대상의 밀도로 전환되었다.
이광호 작가가 그리는 자연 풍경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도시 공간과는 또 다른 미지의 신비로움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의 신체 범위보다 큰 현실의 ‘풍경’이라는 개념은 바라보는 이의 시선과 위치가 적극적으로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에 작가는 기존의 작업 방식인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대상 속에 들어가 직접적인 감각인 촉각을 사용한다. 풍경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신체적 감각뿐 아니라 빛, 냄새, 바람, 소리 등 오감을 통해 전해지는 것들이 다양한 정서로 작가에게 전달된다. 뉴질랜드의 초원과 습지를 배경으로 한 이번 작품들은 공간의 깊이를 표현했던 지난 작업보다 공간의 부피와 시선의 높이가 넓어졌다. 이러한 광대한 풍경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은 마치 창밖을 내다보듯 관망하는 자세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작품 속에도 관망하는 생명체인 ‘꿩’은 이광호 작가의 풍경 속에 종종 등장한다. 여기서의 ‘꿩’은 이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현실의 주체이며, 풍경 작품 속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경험적 존재라 할 수 있다. 뉴질랜드의 또 다른 자연의 모습인 습지는 이름 모를 다양한 수풀들이 엉켜져 캔버스에 가득 메워져 묘사되어 있다. 각각의 화려한 색으로 어지럽게 얽혀 있는 수풀들로 인해 어느 곳 하나 숨 쉴 수 있는 시선의 틈이 없다. 다만 어떠한 반응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수면만이 우리의 시선에 여유를 주고 있다.
이번 전시는 같은 듯 다른 두 가지 풍경의 모습이 각각 두 개의 공간에서 선보인다. 무수히 많은 나뭇가지와 얽혀 있는 가시 돋친 넝쿨의 숲은 그 깊이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가시에 상처 입을 듯 조금씩 물러나게 된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움직이는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이 끝없는 고요한 습지의 호수는 그 투명함에 오히려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특정 장소의 한 부분을 포착하여 단순히 형태의 윤곽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 그 안으로 들어가 느끼고 만진 감각을 캔버스에 표현하였다. 더욱 섬세한 붓질과 과감한 색감으로 인해 깊어진 이광호 작가의 촉각적 향유의 절정을 이번 전시를 통해 직접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