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최고의 색채화가로 불리는 클로드 비알라의 개인전이 7월 11일부터 8월 18일까지 조현화랑_서울에서 열린다. 2005년 개인전을 통해 작가와 인연을 맺고, 이후 2017년과 2023년에 대규모 회고전 및 최초의 한지 작업을 소개한 조현화랑은 이번 개인전을 통해 작가의 가장 최근작을 포함한 10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클로드 비알라의 예술 작업에는 존재 속에서 지속하는 것 외에 다른 계획이 없다. 끊임없이 지금-여기를 표현하는 비알라의 작품은 스펀지, 콩 또는 뼈조각에 비유되는 보편적 형상을 나열하며 구성된다. 물감의 색조와 톤이 다양한 소재의 표면에 스며들고 퍼져 나가는 과정을 통해 우연한 만남을 무한히 만들어내는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무의식적 수행"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주어진 모든 것을 수용한다. [...] 내 무의식이 그것을 제안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옳다; 그리고 내 의식이 그것을 따라잡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우연적 과정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대범하고 이상적인 태도인 셈이다.
1936년에 태어나 올해 88세가 된 비알라는 작업 인생의 막바지에, 한지를 통해 또다시 우연을 유연하게 받아들였다. 2023년 3월 부산 조현화랑에서 연 개인전을 계기로 처음으로 한지 작업을 시도한 것이다. 한국 전통 매체인 한지에 찍힌 패턴이 선명하고 섬세하게 표면의 물성이 색채를 끌어들이는 만남의 순간을 표면에 드러냈다면, 이번 조현화랑 전시를 통해 소개되는 작품은 반복되는 패턴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잠정적인 조화를 구성하는 생명체의 유기적 형태를 더욱 강조한다. 새로운 세포를 표면 밖으로 밀어내며 자라나는 풀처럼, 물감과 물질 표면의 작용에서 일어나는 저항 또는 흡수가 즉각적이고 생동감 있는 존재를 긴장감 있게 빚어낸다. 다채로운 표면 위로 시각을 구성하며 구현되는 존재는 나선형 고리와 함께 순환의 의미와 무한한 시간을 단언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추상 회화가 막다른 벽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던 클로드 비알라는 프랑스 남부의 석공들이 부엌에 칠할 때 스펀지를 반복해서 찍어 꽃 모양을 만드는 방식에서 영감을 받았다. 반복이라는 단순한 원리에 기초한 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며 소박한 기술은 비알라가 1966년에 발견한 우연한 형태와 함께 지속적인 작업 과정으로 자리 잡았다. 캔버스 천, 양탄자, 텐트, 커튼 등 다양한 표면 위에 찍어내는 이 작업을 통해 비알라는 전통 회화의 표현과 매체를 전복시키는 당시의 전위적 미술 단체 ‘시포르/시르파스’의 활동에 참여했다.
1970년대 프랑스 화단을 지배하던 추상 회화로부터 탈피하자고 주창한 전위적 미술 단체 ‘시포르/시르파스’는 지지체/표면이라는 뜻이다. 회화가 주는 모든 허상을 부정하며 회화 자체에 의미를 두었으며, 회화를 둘러싼 불순한 요소들을 제거하려는 노력으로 서명, 제작일자, 제목 등을 일체 포기했다. 비알라는 캔버스의 나무틀을 제거함으로써 기존 회화 매체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었으며, 산업용 타폴린 작업을 시작으로, 추상적 패턴을 끝없이 반복해 나갔다. 스텐실 기법을 사용해 다양한 색상과 표면에 재현되는 모티프를 통해 작품의 주제라는 개념을 없애고, 창조적 행위 자체에 대한 의미와 작품의 존재론적 지위를 탐구하는 작업을 오늘날까지 지속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