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소개
조현화랑 (해운대)에서는 7월 22일부터 김종학 개인전이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김종학 작가를 대표하는 자연 풍경이 아닌 초상화 작품을 집중 조명하는 자리로 특정한 대상이나 조형 양식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작업하는 작가의 열정과 탐구정신을 보여준다. 1977년부터 1989년까지의 초기 인물 드로잉 28점과 신작 41점이 전시되는 이번 전시는 8월 30일까지 이어진다.
인물을 많이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77년 뉴욕에 갔을 무렵이다. 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 지하철에서 마주 보고 서있던 사람들 중 내 기억에 남은 사람들을 집에 와서 그리고 했다.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 아니다. 다양한 인종의 얼굴과 모습이 흥미로웠다. 같은 인종이더라도 피부색, 머리 모양, 옷차림이 다 달랐다.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는 것 만큼이나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이 좋은 공부가 되었다. – 김종학
낭만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고, 솔직하고 생기 넘치는 자연을 그려내는 김종학 화가는 ‘자연’으로 인식되기 이전의 날 것의 자연을 재현한다. 자연과 식물성의 신비를 호명한다.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림은 자연이 아닌 화가의 마음에서 기인한다. 김종학 화가는 자연을 보고 드로잉은 하지만 그림을 그릴 때는 드로잉을 보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의 영기는 드로잉이 아닌 그의 마음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종학 화가는 풍경화뿐만 아니라 많은 인물화를 제작했다. 뭔가 구체적인 대상이나 구상화를 그리고 싶을 때 그는 사람을 그렸다. 인물화의 대상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화가의 마음속에 새겨진 얼굴이다. 아무도 아니지만, 그 누구의 얼굴이다. 김종학 화가가 자신의 몸 밖의 타자를 인식하는 방식은 사람이나 자연이나 다르지 않다. 모든 형상은 그의 마음속에서 잉태된다. 풍경화가 자연의 몸을 빌린 인간이라면 인물화는 인간의 몸을 빌린 자연이다. 김종학 화가가 그려낸 식물과 인물은 그림자도 없이 생략되거나 간소화된 배경 앞에서 강한 정면성을 드러낸다. 관자를 응시한다.
식물과 얼굴이 정면으로 연출되는 것은 김종학 화가의 특질을 보여준다. 존재의 강한 부각, 생명의 강한 부각을 희구하는 것이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현존성, 직접성과 직결된다. 그의 그림이 관자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지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종학 화가의 그림은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가 아닌 화면 밖의 관자와의 직접적인 관계를 암시한다. ‘너’와 ‘나’의 일대일 관계를 정립한다. 이것은 화가 자신과 외부세계의 관계이며,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와 그림의 관계이다.
자연이 아름다운가. 사람이 아름다운가. ‘아름답다’는 것은 그 자체가 가진 내재적인 성질이 아니며, 명확한 기준으로 판단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인간이 그 대상에 부여하는 관념과 감정의 산물이다. 지극한 사랑만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흠모하는 그 마음이 대상을 오랫동안 바라보도록 한다. 자연을 한참 바라보고 머리에 집어넣었다가 화폭만 바라보고 쏟아낸다는 김종학 화가의 말이 바로 사랑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는 자연을 통해 생명의 탄생과 소멸, 존재들의 살고자 하는 욕망과 분투, 생명체 군집의 경이로움을 보았다.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이미 자연 안에 인간의 모습이 내재되어 있기에 그의 풍경화는 풍경화이자 인물화다. 그리고 그가 그려낸 인물화는 인물화이자 풍경화다. 지극한 사랑만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