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화랑(해운대)에서는 산수화에 내장된 다양한 시점을 강조하며 원근이 아닌 이동 시점을 이용해 새로운 산수화를 표현하고 있는 조종성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2014년 <숨겨진 시점, 풍경을 거닐다> 이후 7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는 이동 시점으로 본 풍경의 신작을 만날 수 있다.
동양에서의 산수화는 자연의 표현인 동시에 인간이 자연에 대해 지닌 자연관의 반영이기도 하다. 농경을 주로 하였던 동양인에게 있어서 자연이란 매우 소중하고 절대적이었다. 또한, 무(無)생명의 존재로서가 아니라 인간처럼 살아서 생동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자연과 인간의 이러한 밀접한 관계 때문에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산수화가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초기 전통 산수화는 관념적이다. 자연에 관한 관심이 높으면 산이 커지고, 그렇지 못하면 산의 크기가 작아진다. 옛 화가들은 한 폭의 풍경을 그리기 위해 실재하는 자연을 직접 보고, 경험했을 것이다. 작가는 그들이 걸어 다녔던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이미 그려진 그림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리곤 자신의 머릿속에 담아온 절경들을 상상하여 풀어낸다.
처음 선보이는 4폭의 대작은 서울 경복궁 내에 있는 ‘집옥재’의 모습이다. 집옥재는 고종황제의 서재와 어진을 보관하던 곳으로 ‘집옥’은 옥처럼 귀한 보물(책)을 모은다는 뜻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집들은 모두 실재하는 궁이나 한옥이다. 작가는 작업 초기에 집 전체 라인을 가져와 다양한 형태를 만들었다면, 지금은 실재 집 모양과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최소한의 변화를 준다고 한다. 용마루가 하나인 삼각형의 집은 한옥 구조도에서 보면 측면이고, 양쪽으로 펼쳐진 모습은 정면이다. 이동 시점 시리즈는 존재하는 집과 가상의 산수풍경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실존하는 집의 형태를 가져와 그 안에 나무와 바위, 폭포 등의 실재와 작가 기억에 저장된 것이 혼재되어 그려진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소재들을 사진으로 찍어 그것을 참고하기도 하고, 수많은 자료에서 이미 보아왔던 것들을 떠올려 그리기도 한다.
신작<이동 시점으로 본 풍경 Yellow>은 이전 작품과는 상반된 작업 과정을 가진다. 어두운 배경과 안개, 보일 듯 말 듯 한 집의 모습은 이전 작업보다 몽환적이다. 작업 과정을 보면, 어두운 배경을 채색하기 위해 집의 형태와 안개의 위치를 잡아야 한다. 작업하기 가장 까다로운 것은 배경과 집의 형태와 안개의 균형이다. 안개가 보여야 하기에 배경이 너무 어둡지도 않아야 하고, 금분 안료의 산수 부분이 너무 밝아져서도 안 된다. 배경에서부터 집의 형태를 깨는 위치에 안개를 넣는다. 집의 형태가 많이 나타나지 않거나 부자연스럽지않게 작가는 안개의 위치를 여러 번 시물레이션을 한다. 그 후 집의 위치를 잡고, 주변을 시작으로 작업해간다. 이전 작업은 흰 장지에 먹의 농담을 조절하여 차곡차곡 붓질을 쌓았다면, 이번 작품은 검정 바탕에 금분으로만 농도를 조절하여 그린다. 어두운 배경이 들어가다 보니, 종이마다 다른 기록을 보게된다. 작업장 공간의 환경, 온도, 습도뿐 아니라 작업자의 손자국까지 발견한다. 종이의 성질을 최대한 유지해야 하기에 예민한 작업이다.
조종성은 고정된 시점이나 특정 시각이 아닌 다양한 이동 시점을 통해 관념적인 산수화를 재해석한다. 동양화에서 재미있는 것은 어느 위치에 무엇을 그리는가에 따라 그곳이 하늘이 되기도 하고 바다가 되기도 한다. 작품을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림 너머의 세계로 몸과 정신을 유인해주는 것이 조종성 작가의 산수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