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화랑(해운대)에서는 10월 23일부터 11월 15일까지 이광호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지난 2018년 조현화랑(달맞이)에서 수풀과 습지 시리즈를 보여주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사막을 주제로 한 새로운 풍경 시리즈 12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 풍경들은 캘리포니아의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서 바라본 것이다. 작가에게는 풍경의 종류와 양상에 따라 각각의 의미와 메세지가 다르게 담긴다. 작가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번 작품의 바위와 거석은 인간이 경험한 최초의 미적 경험 중 하나인 숭고와 경이가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선사 혹은 원시시대 초기 문명 미술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느끼는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루시 리파드(Lucy Lippard) 라는 미국의 미술 평론가는 그의 저작 ‘오버레이(Overlay)’에서 우연히 마주친 영국의 오래된 돌무덤을 보고 선사 시대 이미지와 현대미술과의 연관성을 찾았다. 유사한 맥락에서 이광호 작가도 거대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풍경에서 경외감을 느꼈으며, 주술적 기원의 명상에 이르기도 하였다. 광물성 풍경은 동식물과는 달리 생물학적 존재의 시간을 넘어 영속성 그 자체이고, 일상적 존재인 작가에게는 신비로운 대상으로 다가왔다. 나아가 작가에게 바위 풍경은 인격화된 자연으로 해석되었다. 풍경이 보여주는 굴곡과 주름은 마치 인간의 몸과 피부를 연상시키며, 작가의 감각기관은 주술적 차원을 넘어 에로티시즘의 영역에까지 이르렀다.
작업의 과정을 대략 살펴보면 우선, 사진을 광학적인 기구(빔프로젝트)를 이용해 빈 캔버스에 투사한다. 간단한 스케치로 형태와 외곽선을 화면에 옮긴다. 이후 사진에 입각한 재현은 곧 회화적인 행위 과정으로 전환된다. 작가는 자칫 탁해질 화면의 색조나 분위기를 제거하기 위해 유화에서 주로 쓰이는 티타늄 화이트와 같은 안료를 배제하였다. 그러나 유화의 속성에서 최대한 효과를 얻고자 미디엄이나 오일의 혼합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조절했다. 그리고 유화가 지닌 질감이나 색감의 한계를 넘기 위해 콜드왁스를 사용하여 붓과 캔버스 천 사이의 마찰과 미끄러짐을 더욱 효과적으로 발휘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재료의 사용이나 기술 표현의 실험은 마치 돌을 쓰다듬는 촉각을 재현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매끈해 보이는 화면은 실제로는 치열한 작업의 결과이다. 이 과정이 작품의 의미와 개성을 구축하기 위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바람과 물에 마모되고, 복사열에 달궈진 사막 바위들의 질감은 작가의 붓질에 의해 서서히 살아난다. 무수한 손동작으로 남겨진 붓의 흔적들은 화면 위에서 촉각적 표면을 이룬다. 작가는 이전에 작업했던 인물이나 식물(선인장)에서도 꾸준한 회화방식을 보여준다. 인물에서는 얼굴의 주름과 피부 결 혹은 옷의 질감을 선인장에서는 솜사탕처럼 감싸는 잔털이나 가시를 표현함으로써 대상의 표피를 회화의 표면에 그대로 담고자 한다. 이것은 작가의 기본적인 예술의욕(Kunstwollen)이라 하겠다.
– 이미지의 연금술(김정락 미술사학자)_이광호 평문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