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소개
부산 조현화랑 달맞이와 해운대, 서울 갤러리2, 그리고 제주도 갤러리2 중선농원에서 이 배 작가의 개인전이 동시에 열린다. 조현화랑 달맞이와 갤러리2에서는 <Issu du feu>를 비롯해 <Landscape>, <Acrylic medium>, <Drawing>등 작가의 대표 작품이 전시되며 조현화랑 해운대, 갤러리2 중선농원에서는 대형 설치 작품인 <Landscape>와 <Suspens>를 선보일 예정이다. 신작 <Drawing> 시리즈를 비롯하여 총 30여점이 공개되는 이번 개인전은 숯을 통해 삶과 예술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보여주는 전시가 될 것이다.
이 배 작가는 최근 베니스비엔날레 기간에 빌모트 파운데이션(2019)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8년에는 마그 파운데이션에서 단독 개인전을 가졌다. 그리고 2017년에는 프랑스 문화 훈장을 수훈하는 등 세계 미술 속에서 당당히 한국 현대미술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파리를 거점으로 30년 넘게 한국과 파리, 뉴욕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이배 작가는 ‘숯’이라는 재료와 흑백의 서체적 추상을 통해 한국형 모노크롬 회화를 국제무대에 선보여온 작가다. 또한 단색화라는 조형 언어를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국제 화단에 이름을 알린, 한국 단색화의 2세대 작가로 평가된다.
작가는 1990년 도불 이후 서양 미술재료 대신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재료인 숯을 작품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작품에는 숯이 가지는 삶과 죽음, 순환과 나눔 등의 태생적 관념 위에 작가 특유의 예술적 상상력이 더해진다. 숯은 도불 후 서양에서 찾은 동양의 정체성으로 동서양의 화합의 상징적 물성이다. 또한 숯 작업 속에는 동양적 미감의 현대적 재해석이 함축되어 있다.
숯의 작가 이 배. 이렇게 쉽고 명확하게 작가를 설명할 방법이 또 있을까. 그만큼 숯이 지닌 물리적 속성과 철학적 관념이 그의 작품을 설명하는 데 늘 빠지지 않는다. 때때로 혹은 언제나 우리는 그에게 왜 숯을 사용하는지 묻는다. 이유는 무수히 많다. 프랑스 체류 시절에 숯을 사게 된 사연, 숯과 한국의 전통문화, 숯의 제작 과정에 담긴 생명의 소멸과 탄생, 숯에서 만들어진 먹과 동양 문화, 검은색에 담긴 의미 등 수없이 살을 붙여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작품이 아닌 숯에 대한 해석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숯이 더 이상 ‘숯이 아닌 것’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의 작업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Issu du feu>는 1991년부터 시작된 작품이다. 숯을 잘라 캔버스에 부착하고 그 위에 전체적으로 아라비아 고무를 덧칠한다. 부드러운 사포로 표면을 갈면 숯가루와 고무가 섞여 나무의 빈틈을 메운다. 이 배 작가는 숯의 거친 표면과 반사되는 검은 빛을 그대로 드러낸다. 자신이 사용하는 대상의 물질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Landscape>에서 검은 숯과 하얀 여백이 만나는 경계는 대지를 연상시킨다. 그의 작품은 두껍게 쌓인 토양층, 바람에 흩어지는 토양 입자 그리고 비가시적인 대기와 다름이 없다.
<Acrylic medium>은 목탄에서 추출한 검은 안료로 캔버스 위에 형태를 그리고 밀랍 같은 두꺼운 재료를 여러 번 덮은 작업이다. 작가는 마치 동양화에서 종이에 먹이 스며들듯이 그의 제스처를 화면 안으로 정착시키고 싶었다고 한다. 최근작인 <Drawing>은 큰 붓으로 화면에 제스처의 흔적을 기록한다. 작가는 겸재 정선이나 김환기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감수성, 가변성, 빛과 흔들림, 습윤성이 과연 어디에서 왔는지 늘 궁금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비가 많이 오고 습한 몬순 기후 지역의 문화라고 추측한다. 물을 먹은 안료가 마른 종이를 지나가면서 물길을 만든다. 그는 자신의 태어난 자연의 성질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설치 작품인 <Landscape>는 대지를 묘사했던 평면 작업의 연장선이다. 입체 작업은 대지를 묘사하는 것을 넘어 자연의 다듬어 지지 않은 비정 형성과 육중함을 우리에게 현전시킨다. <Suspens>는 바닥에 쌓인 흙더미와 공중에 부유하는 숯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공중에 떠 있는 숯을 통해 물성으로부터 벗어난 하나의 영적인 존재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는 하늘과 땅 사이에 그 둘을 이어주는 메신저일 수도 있다.
거봐. 숯이 모든 것을 해냈잖아.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작가가 숯의 특성을 중요시하는 것은 맞다. 그는 숯을 사용하는 이유가 그 안에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에는 전제가 있었다. 그의 말은 다시 인용되어야 한다. “숯을 좋아한다기보다 숯은 그저 ‘하찮은 물건’이지만 그 안에 거대한 자연,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힘을 발견할 수 있다.” 과연 숯에 자연의 힘이 존재할까. 아니다. 그것은 숯이 아니라 작가의 마음속에서 발현된 것이다. 특별한 존재라 하더라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에는 그저 하찮은 것으로 보일 뿐이다. 그리고 존재의 특별함을 찾아내는 것이 예술가의 일이다.
대상은 생각하고 말하는 주체와의 관계에서만 의미가 있다. 숯의 존재가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은 작가와 그가 사용하는 재료 사이에서, 그리고 작가가 제안하는 예술적 해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예술의 신비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림을 볼 때 형태, 색감, 그리고 화가의 메시지를 찾으려고 하지 물감과 캔버스의 역사나 문화적 가치를 먼저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오류를 범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숯의 의미에 집중하다 보니 작품 그 자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조형성을 의식하지 못하는 그런 위험 말이다. 마지막 질문. 여전히 숯의 의미를 추적하는 데 만족하는가. ‘숯의 작가’라는 수식어는 더 이상 위안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