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화랑(달맞이)은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내면의 풍경을 회화와 드로잉으로 그려온 윤종숙 작가의 개인전을 마련한다. 윤종숙의 작업은 오랜 시간 간직해온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충청도 시골에서 자란 작가는 성인이 된 직후 독일로 이주하여 30여 년간 작가로 활동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적 정서와 기억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림의 주요한 소재로 삼는다. 전시제목 ‘SAN’은 산으로 대표되는 동양적 자연에 대한 상징이다.
독일 표현주의와 한국적 소재
작가는 1995년 독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수학하면서 작가로 성장하게 되고 서구 미술에 대해 연구하면서 표현주의적인 색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특히 20세기 독일표현주의의 대표 화가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에 많은 영향을 받는데, 사물과 풍경의 외형적 특징에 주목하기보다 내적 감정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는 독일 표현주의에 매료된다. 하지만 표현주의를 따르면서도 그들과는 다른 소재를 고민한다. 자신의 뿌리는 한국이며 동양적 사고와 사상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수많은 동양 서적과 자료를 틈틈히 보아왔다. “과거는 지식의 원천이다”라고 말하는 작가는 과거를 지워야할 대상이 아닌 작업의 핵심으로 받아들인다. 결국 표현주의적 기법과 형태, 색채의 활용과 내면에 내재된 한국적 정서를 혼합하여 윤종숙의 회화가 탄생된 것이다.
제작 과정
모든 작품은 사전에 스케치 없이 진행된다. 그렇다고 캔버스에 곧바로 그려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찾고자 하는 형상, 기운, 조형적 완성도가 나올 때까지 뒤덮기도 하고 그 위에 다시 그리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길을 잃기도 한다. 매번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는 것처럼 두렵고 위험하지만 또한 새롭고 설렌다. 무엇을 그리고자 하는 뚜렷한 목적이나 계획을 배재하고 작가로서 이끌어내는 기운에 집중한다. 종국에 완성되는 형태는 단순해 보여도 그 안에는 겹겹이 쌓인 물감들의 다층적인 레이어, 조형적 완성도를 찾기 위한 시간들, 그리고 작가의 에너지가 깊이 묻어난다. 윤종숙의 작업은 결국 이미지의 재현, 형상 표현이 아닌 과정상의 ‘여정’에 모든 것이 담긴다. 때문에 최종적인 이미지가 어떻게 완성될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완성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 또한 자신이기에 엄격해질 수밖에 없고, 회화는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 된다. 마치 산을 정복하는 과정과도 닮아있다. 고난 끝의 산 정상에 오르듯 창조의 고통을 딛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완성의 수준에 올랐을 때의 환희를 즐긴다. 그리고 다시 캔버스 앞에 선다.
벽화 작업
이번 전시에서는 캔버스 작업 외에도 조현화랑 달맞이 공간 가로18m, 세로4.9m길이의 대형 벽화를 선보인다. 오랜 시간 순수하게 평면에 ‘그리기’를 시도해온 회화작업에 집중한 작가에게 벽화는 특별하다. 회화의 원류는 벽에 직접 이미지를 새김으로서 그 영원성을 보존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투영시킨 원초적 행위였다. 회화의 기원이 동굴벽화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중세와 르네상스를 지나며 벽화예술이 발전하였다는 점에서 작가는 벽화야말로 회화의 오리지널이라고 말한다. 이번 윤종숙의 벽화는 과슈로 그려 유화만큼 붓의 흔적에서 작가의 에너지를 세밀하게 읽을 수는 없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압축된 에너지를 단번에 터뜨린다. 전시장 공간에서 불과 4일 만에 완성한 벽화는 빠른 호흡으로 붓을 움직여 마음의 긴장상태를 만들기 때문에 진지함의 깊이와는 다른 작가의 스케일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인간의 감동 모든 것이 저장, 숙성되어 나오는 것이 바로 회화라는 예술매체다. 때문에 회화란 인간이 만든 가장 높은 경지의 표현예술이다”고 말했다. 작품을 시작하기 앞서 생각을 정리하고 에너지를 집중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고민하고 기다리는 인내가 필수다. 그러나 일단 붓을 잡고 그리기를 시작하면 무언가에 홀린 듯 회화의 계시를 따르며 그 세계 안으로 파고든다. 결국 이미지를 구축하는 모든 과정에 대해 ‘회화의 허락’하에 움직인다고 보았다. 그렇게 그려진 선과 색은 힘을 갖는다. 이번 전시는 산과 바다를 마주한 조현화랑 달맞이 공간의 기운 그리고 산(SAN) 의 정기를 대형 벽화와 캔버스에표출시킨 윤종숙 작가의 회화를 만나볼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