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화랑(달맞이)은 2020년 11월 20일부터 2021년 1월 3일까지 세상을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고 회화로 표현하는 홍순명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가족의 역할과 믿음 속에서 생겨나는 오해와 간극을 상처와 얼룩의 형태로 표현한 신작 시리즈를 공개한다. 홍순명의 이번 작업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급격하게 발전한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세대적 갈등과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다.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는 작가와 어머니의 개인적 관계에서 출발한다. 현재 60대인 작가는 90세가 넘은 어머니와의 관계가 아직도 어렵다고 고백한다.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당연한 상식이 내게는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이다. 작가는 장남이라는 위치에 대한 어머니의 믿음과 기대 속에서 매번 의견충돌을 겪어왔다. 세대에 따른 급속한 취향변화와 문화의 차이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족들이 보이지 않게 공유하고 있는 충돌 원인일 것이다. 한 가족이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여기는 ‘흔한 믿음’이 오해의 출발이 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두고 ‘익숙한 오해’가 되어버린다. 작가는 이번 신작을 통해 어머니와의 불화를 살풀이 하듯 풀어냈다.
작품은 최소 3개의 이미지가 혼합된다. 얼룩 안쪽에 그려진 모노톤의 내피는 대체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젊은 시절 혹은 오래된 가족 앨범의 한 장면이다. 그리고 얼룩 바깥을 이루는 그림은 작가 본인의 모습이다. 캔버스 안에서 과거의 부모님과 현재의 자신이 오버랩 된다. 겹쳐진 이미지와 사건은 나름대로의 연관성을 바탕으로 선택되었다. 예를 들면 같은 모자를 쓰고 있는 아버지와 현재의 자신이 오버랩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환경, 소품, 나이 등의 요소를 통로로 서로 연결된다. 배경과 색감, 분위기는 다르지만 부모자식간의 정체성은 한 세대를 아우르며 공유된다.
숨겨진 3번째 이미지는 얼룩의 실루엣이다. 실루엣의 모양은 어머니가 출생하신 1932년부터 작가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1985년까지, 한국사회의 주요 장면들이다. 1970~80년대 개발과 건설의 현장, 착공식의 축포, 서울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콘크리트 건물 등 한국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장면들이 선택되곤 했다. 실루엣의 윤곽을 통해 어긋난 배경, 분위기, 색감은 급속도로 변화된 우리 삶을 상징한다. 빠른 현대화로 인해 세대 간 가치관은 어긋날 수밖에 없었고 부모님 세대와 우리 세대가 각각 조화롭게 만나고 화해하기보다 서로 부딪치고 마찰이 일어나며 감정의 평행선을 만든다. 작가는 부모자식간의 세대 차이와 어긋난 사고가 단지 개인적 성격의 다름이 아닌 시대와 환경이 만들어낸 간극이며 부작용이라 이야기한다. 최종적으로 3개의 이미지가 혼합되어 완성된 모습은 어떤 하나도 완벽하지 않으며 깨지고 분열된 상태다. 그 분열된 모습 자체가 바로 자신 그리고 우리의 현재임을 이야기한다.
제작 과정을 보면 먼저 오래된 가족 앨범에서 부모님의 사진을 선택하여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다. 그 위에 한국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흑백으로 변환하여 캔버스 위에 빔 프로젝터로 투사한다. 이미지의 윤곽선에 맞춰 보존할 부분을 마스킹 테이프로 부착한다. 그리고 전체를 다시 백색으로 칠한다. 이후 현재의 자신이 들어간 이미지를 유화로 그리는데 밑바탕에 그려진 과거와 새롭게 그려질 현재가 의도대로 겹쳐지도록 프로젝터로 사진을 투사하여 위치를 정해 그린다. 마지막으로 마스킹 테이프를 걷어내고 완성한다.
이번 신작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하여 작가는 2018년에 만난 이라크 작가 히와 케이(Hiwa K)와의 대화를 회상했다. 히와 케이가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작품화하기 위해 이라크에서 목숨을 걸 정도로 위험을 감수하는 과정을 보며, 작가는 철저히 고증하거나 이유가 확실한 작업만을 다루기로 결심한다. 그 압박으로 1년 이상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다가 자신과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 시선을 돌려 현재의 작업을 시작했다. 새롭게 발표되는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 시리즈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족의 관계성을 돌아보게 하고, 한국 현대사의 특수성을 더욱 폭넓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