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동은 “생기 있게 움직인다”를 뜻한다.
‘만물이 생동하는’이라는 표현은 바로 자연의 기운이 역동적으로 움직여 가시적으로 그 변화가 관찰될 때 사용된다. 그러나 우리가 순간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 한다 할지라도 만물은 끊임없이 생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21세기 과학은 증명해냈다. 아무런 움직임이 관찰되지 않는 물질의 현상 안에도 ‘생동’은 존재하는 것이다.
김종학은 38년이란 긴 세월을 자연 속에서 만물의 생동을 오감으로 경험하며 살아왔다. 눈으로만 관찰하는 관조자적 자세가 아니라 자연과 하나됨의 경험을 숙련하며 자연만물의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예민하게 포착해 왔다. 그에게 만물은 죽어가는 순간과 혹은 그 다음의 시간에도 변함없이 역동하고 유동하는 존재이다. 이렇게 그는 보이지 않는 만물의 생동적 세계에 민감하게 감응하며 반응한다.
그래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만물의 생동은 단순히 ‘그려진다’라고 하기보다는 여러 형태와 방법의 실행과정을 통해 여과되고 정제된 후 화폭으로 옮겨진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보여지는 표상적인 형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가 내제하고 있는 기운의 생동을 화폭 속에 재구성하는 것이다. 작가는 온몸으로 만물의 생동을 표현한다. 그의 아틀리에는 자연의 요소 요소들이 뒤엉켜져 존재하고 작가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어우러져 혼돈적인 자연의 상태를 연상시킨다. 섬뜩하리만큼 거칠다가도 미묘하리만큼 섬세한 그의 움직임은 그의 화폭에 고스란히 전달되어 존재한다. 만물의 ‘생동’이 그의 작품안으로 들어갔다.
작가는 오랜시간 만물의 생동을 직감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젊은 시절엔 온몸에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위험을 무릅쓰고 자연에 몸을 던지며 가까이서 관찰했다. 그 결과 작가는 자연과의 일치를 경험하였고 그 경험을 ‘생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수천 장의 스케치로 연마된 감각을 발동시켜 화폭에 옮겨 놓는다.
그는 80의 나이에도 ‘기운생동’을 향한 숭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