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화랑에서는 4월 12일부터 5월 12일까지 자화상을 그리는 이소연 작가의 개인전 ≪검은 숲≫을 개최한다. 2014년 베를린 돔과 모자 시리즈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검은 숲”은 밤이 그려내는 풍경에 매혹된 이소연 작가의 새로운 풍경 속에서 짙고 농밀한 밤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세로 2.5미터 가로 6.5미터 대작을 포함한 신작 16 점이 선보인다.
이소연의 작업은 자신의 모습을 모티브로 하되, 자아와 타자의 경계지점에 서있는 관조적인 성격의 하나의 캐릭터로 구축되어 있다. 회화 속 작가의 모습은 치켜 올라간 가는 눈, 핑크색으로 상기된 볼과 뾰족한 턱,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을 특징으로 하는 독특한 감성의 캐릭터로서, 이상의 요소들이 모두 공통적인데 반해 의상과 소품, 배경 등의 요소들은 작품마다 다른 특징을 보여왔다. 이는 독일생활에서 느낀 동질성과 이질성, 낯선 상황에 놓여진 이방인으로서의 자아의 모습들을 상징한다. 또한 기존의 작가 작품 속 인물은 언제나 작품의 가운데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정면성은 타인 혹은 주변상황을 주시하는 자아의 모습, 그리고 역으로 타인과 세상으로부터 관찰 되어지는 자신의 모습이 공존함을 내포하려 한다.
보통 자화상은 자기 성찰, 인물에 초점을 두는 것에 반해 그의 자화상은 그림 안에서의 역할, 배경, 소품으로 보일 뿐이다. 오히려 그의 그림에서는 인물을 둘러싼 배경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화면에 등장하는 배경 속 장소는 작가가 직접 촬영하거나, 여행 중에 우연히 간 곳들이다. 실존하는 장소가 모티프지만 그의 손을 거치면서 실제가 아닌 미지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실제 사진에 기초한, 혹은 사실적인 오브제지만 그의 화폭에서는 낯선 풍경으로 다가온다.
이번 작업에서는 현실과 비현실의 충돌로 예기치 못한 심상의 교차점을 창조해내며 그 안에 풍경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신작 <검은 숲>은 공간적 확장을 시도한 작품들이다. 작가의 작업실은 지척이 자연인 양평 시골마을에 자리하고 있는데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갈 무렵 집주변을 산책하면서 보았던 이미지들을 모티프로 하여 시간과 공간을 재구성하였다.검은 망토를 두르고 표정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 크기의 자화상 작품은 베트남 퐁냐께방(Phong Nha-Ke Bang)1 근처 국립공원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독일에 있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로 알려져 있는 이 퐁냐께방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게 되었는데, 그 이후 미지의 세계라 불리는 이곳을 작가는 늘 동경해왔다. 국립공원 곳곳에 포진해 있는 이 천연 동굴들을 대면한 순간 거대한 자연의 위대함 앞에 경이로움을 느꼈고 그것을 자신이 느낀 미묘한 감정들과 함께 작품에 담아냈다.
작가에게 있어서 숲과 동굴은 감정들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베트남 여행은 시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친한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후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에 떠난 여행이였다. 인물의 크기가 작아졌다고 해서 화면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는다고 해서 작품이 내포하는 의미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작가는 자신 주변의 모든 것을 화면 속으로 끌어 들여, 그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회화적 언어가 되도록 구성하였다. 이것들은 그의 기억과 경험의 구성물이면서 회화적 모티브로서 다른 요소들과 결합되어 미묘한 심리적 감상적 세계의 일부가 된다.
조현화랑은 젊은 한국 여성 구상 화가의 계보를 잇는 이소연 작가의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회화의 오늘을 발견하고, 회화가 앞으로 나가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또한, 한층 깊어진 작가의 사유와 작업 변화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