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화랑(해운대)은 초현실적 무대를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회화로 표현하는 이소연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2019년 《검은 숲》이후 조현화랑에서 2년만에 개최되는 이소연의 전시에서는 ‘잠옷’을 소재로 한 신작과 더불어 미발표되었던 동물시리즈를 선보인다.
사람은 타인을 볼 때 가장 먼저 얼굴을 본다. 생김새와 표정, 말투로 인상을 파악한다. 그리고서 옷차림과 행동, 분위기를 통해 그 사람의 전체적인 모습을 알게 된다. 이소연 작가는 자화상을 그린다. 하지만 이소연의 자화상들은 모두 동일한 얼굴을 하고 있다. 치켜 올라간 눈에 붉게 물든 볼, 굳게 다문 입술까지 무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위치 또한 화면의 중앙을 차지한다. 작가는 표정에서 읽히는 심리보다 다른 것에 집중하도록 의도했다. 얼굴과 자세를 고정시킴으로서 옷의 모양과 질감, 색채, 스타일 그리고 배경에 주목하도록 하였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얼굴을 닮게 그리는 자화상에서 벗어나 코스튬과 색채를 통해 작가의 심상과 내면의 심리를 표현한 자화상을 시도했다는 점이 타 자화상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잠옷과 소품은 작가가 직접 보유한 물건들이다. 제작과정을 보면 먼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대로 그에 맞는 옷을 직접 골라 입고 가발을 쓰거나 선글라스, 모자 등의 아이템을 착용한다. 그리고 소품을 들거나 주변에 놓아 세팅 후 자세를 잡고 구도에 맞게 사진으로 촬영한다.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은 작가가 직접 연출한 실물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 주요 소재가 된 잠옷들은 작가가 독일 유학생활 기간을 비롯해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며 수집한 옷들이다. 국내에서는 찾기 어렵지만 영화나 잡지를 통해 볼 수 있는 익숙한 옷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잠옷이란 편안한 기능성의 옷이면서도, 한편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의상이다. 작품을 보면 파자마 혹은 원피스 등 평범한 잠옷도 있지만, 시스루나 란제리에 가까운 잠옷도 있다. 대중매체나 잡지 등을 통해 접해왔지만 실생활에서는 선뜻 시도하기 어려운 옷과 가발 그리고 독특한 패션 아이템의 조합은 익숙하지만 낯선 경험을 선사한다. 잠옷이라는 소재가 은유하는 사적 공간, 그것을 입는 밤이라는 시간적 상상은 작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지만 누구나 간직할법한 개인적 취향 그리고 은밀한 성적 판타지를 소환한다. 때문에 이소연의 자화상은 화려하면서도 어딘가 어둡고, 자유로우면서도 한편 외로운 양가적 감정이 교차된다.
동물과 함께한 작업들의 경우 배경이 있다. 배경은 실존하는 장소로 작가가 직접 방문하여 촬영한 풍경이다. 이전 작업 〈검은 숲〉을 비롯해 동물 시리즈에서는 배경과 사물, 의상이 총체적으로 동원되어 초현실적 무대를 펼쳐내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서사를 만들거나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반면 신작 잠옷 시리즈에서는 배경을 단색으로 처리하여 그간 시도해왔던 상황에 대한 연출을 배제하고 오직 코스튬에 집중하도록 의도했다는 차이점을 보인다. 이처럼 작가는 ‘잠옷’이라는 소재와 화려하고 원색적인 색채를 통해 표면에 드러나는 사회적 자아가 아닌 솔직한 내면적 자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였다.
본 전시를 통해 작가의 내면속 자화상을 살펴봄으로서 현대인들이 사회적 관계 때문에 숨길 수밖에 없는 내밀한 상상력과 판타지를 꺼내어 확인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순수회화에 매진해온 이소연의 작업을 통해 한층 깊어진 작가의 사유와 작업 변화를 확인함으로써 한국 회화의 오늘을 발견하고, 회화가 앞으로 나가가야 할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