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화랑(달맞이)은 국내 아트퍼니처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최병훈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가구’라는 실용적 사물을 예술과 결합시킨 최병훈의 작품은 아티스트의 창의성, 디자이너의 감각 그리고 공예가의 기술이 집대성되어 세련된 미감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2011년 이후 조현화랑에서 10년 만에 선보이는 본 전시를 통해 한국적 미의식으로 응집된 최병훈 작가의 신작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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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역사와 삶 속에서 예술은 시대의 가치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최병훈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본질적 질문이다. 고려시대를 빛냈던 고려청자처럼, 조선시대의 담박한 미를 상징하는 조선백자처럼 최병훈의 작업은 재료 본연의 생명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 시대의 미감과 가치를 찾아가는 투철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20대부터 다양한 대륙을 여행하며 타국의 문명을 접했던 작가는 그들과는 다른 한국적 정서와 매력을 작품에 녹여내고자 노력해 왔다. 장식성이 배제되고 여백과 기운으로 채워지는 한국의 미는 표면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얼핏 단순하고 비어있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 힘과 균형이 숨어있다. 특히 최병훈의 작품에는 물리적인 균형은 물론 투박함과 부드러움의 균형, 오브제와 공간의 균형, 순간과 영원의 시간적 균형이 존재한다. 그리고 물리적 구조와 정신적 대상 사이의 균형이 핵심이다. 현재 화랑에 전시된 3점의 작품은 공간과 작품 사이 힘의 균형을 극대화 했고, 중도의 미덕을 이야기 한다.
본 전시에 선보인 작품 〈Afterimage of beginning〉의 재료는 인도네시아산 바잘트(Basalt) 즉 현무암이다. 화산폭발 이후 수억만 년 땅 속에 묻혀 있던 화산암은 결국 시간의 덩어리로 응축되었다. 현무암은 본래 흑색이지만 표면의 황토마저도 시간의 겹 속에서 돌의 일부가 되었다. 최소 한달 반 에서 두 달 이상 수작업으로 표면의 일부를 갈아내는 과정을 통해 작품에는 거칠고 투박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한다.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머금은 돌덩이는 작가의 손길이 닿아 예술작품이 된다. 이후 가구로서 사람과 접촉하며 생명을 얻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1년 이전 조현화랑에서 선보여온 〈Table〉, 〈Chair〉, 〈coffee-table〉등 유연하고 심플한 퍼니처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전작을 넘어 조각적 예술성을 부각시킨 바잘트 작품만으로 과감하게 전시장을 채웠다. 단 3점이라는 최소한의 수량은 돌의 육중한 무게감 그리고 공간과의 긴장감을 극대화하기 충분하다. 또한 암흑 속에 작품만을 비추는 조명은 표면 디테일을 드러내기보다 침묵 속에 내재된 철학적 깊이를 읽도록 연출되었다.
‘드러냄의 얕음’보다 ‘내면의 깊이’를 찾아가는 길에 나는 자연을 만난다. 그 길 또한 깊고 멀다 – 작가노트
작가는 아트퍼니처가 쇼파 혹은 침대처럼 휴식과 생활에 밀착된 기능으로 쓰이기를 거부한다. 작가는 관객이 자신의 작품에서 ‘사색’과 ‘명상’하기를 요구한다. 작품에 몸을 밀착시키면 자연물과 하나가 되며, 나 역시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어나 눈으로 관조할 때는 가구가 아닌 조각 작품이 된다.
최병훈 작가는 1993년부터 현재까지 파리의 다운타운 갤러리(Galerie Downtown), 뉴욕의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Friedman Benda) 등에서 꾸준히 전시요청을 받고 있다. 또한 독일의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최근 2020년에는 미국 휴스턴미술관 신관에 작품 〈선비의 길(Scholar’s way)〉을 영구 설치했다.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등 세계 거장급 작가 8명이 참여한 장소맞춤형 커미션에서 아트퍼니처가 아닌 조각작품을 의뢰받아 예술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한국적인 멋과 미는 미국, 유럽 등 서구인의 시선에서 더욱 신비롭고 특별하게 해석되고 있다. 올해로 22번째 개인전을 맞이한 최병훈의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는 너무 일상적이라 주목하지 않았던 한국적 미와 가치의 깊이를 새삼 재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