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소개
조현화랑에서는 12월 12일부터 1월 20일까지 안지산 작가의 개인전 <CUT OUT>을 개최한다. 유럽에서 7년간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작가의 귀국 후 갤러리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200호 대작 회화를 포함한 신작 13점을 발표할 예정이다. 실험적인 태도와 폭넓은 상상력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영페인터로서,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층을 보여주는 작가는 인간이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며 철학적인 주제인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 모색한다.
안지산은 덤덤하게 지나간 시간 속에서 우리가 흔히 보는 이미지의 실체에 대한 질문을 했고, 현실 혹은 가상을 그림과 사진 꼴라쥬를 통해 표현해 왔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타지에서의 작업은 점점 더 폐쇄적 상황의 연출과 무거운 색에 치중하며 표현적 변화를 모색했다. 그러한 상황은 개인 성향과 트라우마적 기억1 속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림 그리기에 대한 회의와 희열이 동시에 맞물려 발생하는 일이기도 했다.
기존 그의 작업방식은 인터넷이나 영화, 신문, 잡지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수집된 이미지를 조합하여 재구성하는 방식이였다. 이 과정에 지칠 때쯤 작가는 눈앞에 실재하는 것을 대상화하는 과정으로 관심2을 옮겨갔고 그 후 네덜란드 작가 바스 얀 아델(Bas Jan Ader)의 작업과 삶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2014년 라익스 아카데미에서부터 구상했던 작품들의 시작점인, ‘I’m too sad to tell you’ (나는 말할 수 없을 만 큼 슬프다)라는 회화작업3을 통해 슬픔을 간접경험하며 작가에게는 굉장히 낯선 작업 과정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중요한 작업이였다.
작가에게 작업실은 회화적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근원지이자 생산지이다. 이곳에서 그는 심리, 기억, 경험, 트라우마의 세계 사이에서 회화라는 자신만의 무대의 연출가가 된다. 즉, 작가의 재해석을 통해 또 다른 내용과 시간을 덧입고 극적인 상황으로 구성된다. 작품을 통해 보여지는 현장 속에 자신의 모습을 대입하기도, 매우 먼 거리에서 바라본 현장의 모습을 마치 목격자 입장에서 묘사하기도 한다.
그림 위의 거칠게 바른 가상의 공간들은 실재하는 작가 작업실 풍경이나 작은 미니어처로부터 재현된 것이다. 작가는 배경의 거친 표현을 위해 붓, 나이프 뿐만 아니라, 손에 잡히는 것들(비닐, 장갑, 노끈, 손, 나뭇가지 등등…)을 사용하는데 주저함이 없고 어설픔에 신경 쓰지 않는다. 이번 전시 ’T-shirt’ 시리즈에 등장하는 작가의 낡은 작업복과 ‘Flower’ 시리즈의 조화 또한 실제로 작업실에 존재한다.
그의 배경에는 초현실주의에서 강조하였던 우연히 발견된 사물 자체의 자연스런 결합, 혹은 완전히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결합되는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각각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여성이 머리에 사과를 올리고 있는 작품4은 80년대 한국 두통약 광고 이미 지에서 착안한 것으로 사람을 판넬로 세워 비현실적인 무대 연출을 하고자 했다. 연극적 이미지를 먼저 구성하고 이를 캔버스 위에 회화로 옮기는 작가의 작업은 불안한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재현하는 과정이며, 사전 작업을 통해 평면에서 망각되기 쉬운 감각을 몸에 익히어 회화적 감각을 넓히고자 한다. 엄청난 양의 흑백사진 속에 파묻혀 앉아있는 작품5은 네덜란드에서 있었던 해프닝을 옮긴 작업이다. 네덜란드에서 생활하던 당시 낡고 오래된 작업실을 사용하였는데, 같은 건물의 동료 작업실에서 불이나 건물 전체를 폐쇄하여 한동안 건물 출입이 통제되었다. 3-4개월 동안 작업을 하지 못하던 그 시기에 하루는 술을 많이 마시고 잠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facebook을 통해 수 많은 사람들로부터 메세지가 도착해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작가가 전날 밤 술 기운에 그 많은 사람들에게 메세지를 보냈는데 그들이 답장을 보내온 것이였다. 작가는 그날의 일을 회상하며 ‘Everyday’ 시리즈를 제작하였다.
반고흐 작품에서 색을 뺀 프린트 된 이미지를 찢어 놓은 작품6은 아르코미술관에서 발표했던 그의 전작인 ‘Falling’과 ‘Dying’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모든 것에 의미를 두려고 하는 행위가 덧없음을 강조하고 결국에 모든 것은 떨어지고 사라진다고 말한다. 또한, 기존 작업에 내재되어 있는 삶에 대한 허무함과 죽음의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됨을 알 수 있다. 그의 작품 소재로 간간히 사용되는 새는 이번 전시에서 비둘기로 등장한다. 새를 선택한 것은 추락할(떨어지다) 가능성을 항상 품고 살아가는 것에 작가 스스로가 매료되었고, 비둘기는 날개를 가진 것 중에 가장 일반적이거나 시각적으로 많이 소비되는 것에서 보편적인 대상을 고른 것인데 그 어떤 대상보다 쉽게 길들일 수 있는 수동적이고 약한 대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작품의 두터운 무게감, 강렬한 붓 터치는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동시에 담담하게 표현된 작가의 내면세계를 통해 새로운 회화적 시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조현화랑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며, 오로지 회화에 대한 독특한 시각적 접근을 통해 회화의 본질에 다가가는 작가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